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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송철호변호사…노무현정부 국민고충처리위원장
"눌린자를 일으키고 굽은 것을 바로 펴는 변호사"
2017년 06월 08일 (목) 10:10:21 전용모 기자 jym1962@naver.com
   
▲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송철호 변호사. 조성진 인턴기자 dklove222@naver.com

[포커스데일리] "숱하게 지고 상처 받아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 끝 날까지 사람과 자연을 많이 사랑하고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참여정부시절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지낸 송철호 변호사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당시 청와대서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한 후 배석자들과 차를 마시면서 "송 위원장, 국민의 고충을 해결하는 국민의 해결사 노릇을 해야 되는데 잘 할 수 있겠지요"라는 물음에 불쑥 "대통령님, 제 체질에 맞는 일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대학교 때의 별명이 '뒤처리분과위원장'이었습니다"라고 대답해 박장대소를 한 일화가 있었다. 

대학 때 항상 친구사이에 술값 계산, 널부러진 친구, 부질없는 시비 등 골치 아픈 문제가 있으면 마음 약한 그가 뒤처리를 담당하다보니 얻은 별명이다.

그는 노무현 변호사, 문재인 변호사와 함께 인권변호사로서 부산에서 생활을 하다 1987년 2월 울산으로 왔다. 당시 울산에는 변호사가 7명 밖에 없던 시절이었고 그는 신참이었다. 

1987년 7월5일 현대엔진(주)에서 권용묵 등이 민주노조를 설립 신고한 것이 신호탄이 돼 노동조합운동은 현대그룹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그렇게 소위 돈 안 되는 인권변호사로 떠밀리다시피 맡았지만 민주화 및 노동운동으로 구속된 노동자, 학생, 시민들을 위해 활동해 왔다. 

◆ '눌린 자를 일으키고 굽은 것을 바로 펴는 변호사'

인권변론을 맡으면서 돈이 되는 기업관련 사건은 대부분 철수했다. 직원들 월급주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이럴 때 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도움을 뿌리치지 말라'는 법조인의 윤리를 가슴에 품고 있었고 '눌린 자를 일으키고 굽은 것을 바로 펴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이 문구가 송 변호사의 신념이자 25년간 정치에 도전하고 지탱하게 해주는 정신적 지주가 돼줬다. 

여전히 그는 법치주의자이자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신봉자이고 노사 평화주의자다. 그의 말대로 어쩌면 ‘인간 변호사’라는 말이 더 걸맞다.

그 시절 울산지역 민주화운동의 본산역할을 한 민주시민회가 결성됐고 송 변호사는 공동의장을 맡았다. 1990년 이후 YMCA이사장, 울산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 노무현·문재인 인권변호사와 활동하던 시절의 일화를 들려주고 있다. 조성진 인턴기자 dklove222@naver.com

◆ 25년간 국회의원, 시장선거에 8번 출마 '지역색' 발목

"저는 노무현 선배, 김대중, 이기택 민주당 공동대표 등으로부터 총선출마를 권유를 받았지만 스스로 준비가 안됐고 온 가족이 나서 반대하는 바람에 거절하느라 고생했다. 마지막으로 87년 6월 항쟁 당시 부산에서 투쟁의 선봉에 섰었고 나와 함께 천주교정의구현 부산경남 공동대표를 맡았던 박승원 신부를 찾아갔다. '송 변호사 같은 사람이라도 용기를 내야하는 것 아닌가요'라는 말이 출마하기로 결정한 것이지요."

1992년 민주당 후보로 울산 중구에서 14대국회의원선거 출마를 시작으로 25년간 국회의원과 시장선거에 8번 도전했지만 석패했다. 

2002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시절 공약으로 영남지역에 시·도지사 하나를 꼭 만들겠다는 공약에 따라 송 변호사는 2002년 6월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경선에서 김창현 후보를 꺾기도 했다. 늘 여론조사에서는 앞서도 투표에서는 졌다.

외지에서 온 사람도 이길 수 있다는 신념으로 싸워 왔지만 지역토착세력과 노동도시 울산의 야권 분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인지도는 높으나 '호남출신 울산시장이 웬말이냐'는 지역 색에 늘 발목을 잡혔다. 그것도 외지인이 대부분인 울산에서다. 

이번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이름으로 울산지역에서 38.14%(28만2794명)로 1위를 기록했다. 여기에는 송철호 변호사의 그간 노력이 작용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 한국감정원 부산지부서 4년간 근무하면서 사시 최종 합격

"나 때문에 가족은 물론 상처받은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어떤 선거이든지 단 한번 만이라도 이겨서 같이 기뻐하며 울어봤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

그는 1949년 5월 부산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다 8세 때 모친의 작고로 7남매(5남2녀)는 부친의 고향인 전북 익산의 할머니한테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시 부산으로 와서 부산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그는 1977년 울산 백양사에서 사법고시 공부를 했고 1차 합격했으나 뜻을 이루진 못했다. 그러다 아이 둘을 낳고 한국감정원 부산지부(노조지부장)에서 4년을 근무하면서 "넌 물에서 태어났고 반드시 법조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부친의 운명에 대한 확신과 물에 대한 뜻에 못 이겨 일과 야학을 병행해 결국 꿈을 이뤘다. 

아직도 그는 부친의 물에 대한 인연론 때문에 혹시 그간 일이 잘 안 풀린 것도 물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고 물이 보이는 곳이나 안 되면 베란다에 인공 못 이라도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 송철호 변호사는 문재인 당시 의원의 권유로 보궐선거에 무소속 시민후보로 출마하게 됐다. 당시 문재인의원이 송철호후보를 여러날 방문해 지지유세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송철호변호사>

◆ 노무현, 문재인 변호사와의 30년 인연 소개

송 변호사는 화제를 바꿔 당시 노무현, 문재인 인권변호사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두 분(노무현, 문재인)은 신념이 있는 인권변호사였지만 난 어쩔 수 없이(?) 울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게 됐지요. 야구로 비유하면 노 변호사는 늘 창의적이고 날카로우면서도 가끔은 폭투(?)를 하는 투수였다면 문 변호사는 묵묵히 공을 받아내야 하는 포수, 저는 외야수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노 변호사가 대우조선 노사분규현장에 갔다가 통영지청에 구속됐을 때도 문 변호사가 뒷일을 수습하면서도 한 번도 원망하거나 찡그러진 인상을 본 적이 없었고 참여정부시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마디로 듬직함과 뚝심의 소유자다. 몸가짐의 정갈함은 오히려 성직자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게 문 변호사와 함께 하면서 느낀 점입니다." 

또 인권변호사시절의 일화도 들려줬다.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제가 현대자동차 대의원을 석방시키고 난 뒤 얼마 후 울산구치소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됐는데 ‘나한테 왜 연락 안했느냐’ 물으니, ‘변호사님은 인권변호사라 돈 받고 하는 것은 안하는 줄 알고 그랬다’는 말을 듣고 사실 너무 섭섭하고 화가 난 적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러자 노무현 변호사도 "나도 고생해서 석방시켜 줬더니 자신들은 투사고 나는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알고 우리 집에 와서는 ‘변호사는 잘 사니까 양주 있는 거 다 먹어도 되지요’ 라며 죄다 마시고 거실에서 잔적도 있었다"며 서로 웃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송변 니는 부산고등학교 나왔고 나는 부산상고 나왔다 아니가. 그러니 내가 돈버는 방법을 잘 알지”하고 노 대통령이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고기를 사주며 웃었던 일도.

 "'일요회'가 있는데 이건 영남권에서 낙방한 위원장들이 모임인데 노무현 변호사가 좌장을 맡았고 저와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 조경태 의원 등이 활동했다"고 전했다. 

◆ 시민운동으로 울산지역 발전 견인차 역할

울산광역시 승격’(1997년 7월), 울산KTX역유치(2010년10월 준공), UNIST(2009년 개교, 울산과학기술원)유치. 

이 세가지는 송철호 변호사를 빼고 논할 수 없는 이야기다. 울산광역시 승격은 김영삼 문민정부시절 공약이었다가 흐지부지 해진 것을 유치시민운동본부를 만들어 가며 투쟁해 얻은 결실이다. 울산KTX역과 UNIST유치는 노무현 참여정부시절 유치로 울산시장의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그간의 노력을 대변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참여정부시절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하면서 '국민의 귀로 듣고 국민의 가슴으로 느끼며 국민의 발이 되어 뛰겠다'’는 혁신구호를 제정하고 혁신메시지라는 이름의 편지를 내부통신망에 올리고 심지어 파견 나와 있는 방위병까지 자기소신을 개진하게 됐다. 

이로 인해 행정자치부 평가에서 1등을 했고 공직자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훈장인 청조근조훈장을 받기도 했다.

   
▲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 송철호 변호사는 문재인 당시 의원의 권유로 보궐선거에 무소속 시민후보로 출마하게 됐다. 당시 선거 과정에 문재인 의원이 송철호 후보를 포옹하며 격려하고 있다.<사진제공=송철호변호사>

◆ 딸 둘 동시사법고시 합격, 막내아들 미국 변호사 

송변호사는 아내인 홍영혜(춘해대 간호학과 교수)씨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딸 둘은 동시에 사법고시합격 해 김앤장과 KT&G법무팀에 근무하고 있다. 사위 2명 역시 법조계(검찰, 변호사)에 몸담고 있다. 둘째아들은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일하고 있고 막내아들은 미국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곳에서 목사 딸과 결혼해 살고 있다.

막내아들이 일하는 로펌은 버락 오바마와 미셀오바마가 같이 일하다 결혼한 곳으로 유명한 대형로펌이다 

막내아들은 미국 교환 국비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중3때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했다.

 그것도 직항로를 보내자는 송 변호사의 주장을 꺾고 비용도 아끼고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해야한다는 아내의 입김(?)으로 동경과 다트로이트를 거쳐 클리브랜드에 도착한 사연도 들려줬다. 

"사실 저는 명분과 뜻이 있으면 위험을 감수하면서 광장에 서는 것을 피하지 않는 데 아내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을 신념으로 조용히 봉사하는 신앙을 삶의 가치로 보고 있어 정반대 인 셈이죠." 

◆ 아내로부터 막내아들(?) 취급, 토론가족문화 

그는 아내로부터 다섯 번째 막내아들(?)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정치를 한답시고 그만큼 가정에 소홀히 했고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도 일상의 가정처럼 다정다감한 행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60점의 점수를 줬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기에는 아내와 자식에 대한 고마움과 신뢰, 사랑이 녹아있다. 

이렇다 보니 주위에서는 어떻게 자녀교육을 했는지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하지만 정작 송 변호사는 되레 아이들을 방임(?)했다고 너스레를 늘어 놨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토론을 많이 시켰다고 한다.

가령 어린이날에 무얼 먹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서로 토론을 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로비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항상 문제가 생기면 각자 자기주장을 펴고 그것을 설득해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도록 유도했다. 이게 가족문화이고 많은 법조인을 탄생시킨 것이다. 

성당에 잘나가라는 잔소리 외에 아이들에게 아버지로서 입버릇처럼 해준 말이 있었다.

   
▲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 3선시장을 중도사퇴하고 국회의원에 출마한 박맹우 의원에 맞서 무소속 야권 단일 시민후보로 나선 송철호 후보를 조국 교수가 생애 첫 후원회장을 맡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송철호 변호사>

◆ 자녀들 교환학생 연수, 배낭여행 과감히 도전케 해 

"늘 최고의 삶의 모습은 밝고 건강하게 일하는 삶이고 거기까지가 인간의 영역이다.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겨라. 그러니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는 마음을 비워야 된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국내외 각종 경연대회, 교환학생 연수, 배낭여행 등을 과감하게 도전하게 했다. 취업준비나 사법고시 준비로 바쁜 과정이라도 자녀들이 도전하게 했다. 이런 결정은 진취적인 아내가 주장하고 송 변호사가 동의하는 식이었다. 이런 부모의 영향으로 일본어와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법조인이 됐다. 

송변호사의 형(송정호)은 DJ정권 때 법무부장관을 지냈다. 송 변호사는 그때의 일을 되새겼다. 배고픈 동생에게서 구운 옥수수를 뺏어 멀리 던지고 전체(7남매)를 위해 참을 줄 알아야 함을 가르치던 중학생 시절 형의 모습을 기억했다. 

◆ 자신의 이상형 담긴 망향과 향수가 애창곡 

그의 애창곡은 가곡스타일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그대가 있기에 봄도 있고 아득한 고향도 더욱 정들 것일레라’의 가사를 담은 정지용 시인의 망향과 이동원의 향수가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그의 이상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 '사랑했어요' 라는 노래도 부르는 낭만적인 면도 있다. 그는 힘들 때면 항상 지혜와 용기를 구하는 기도로 한다고 한다. 

그의 호는 일파다. '어떤 일에도 굴하지 말고 줄기차게 일어나라'는 의미다. 불가사의하게도 다른 시기에 다른 곳에 사는 스님과 부친이 같이 권했고 송 변호사 자신이 중히 여기는 인연의 사슬을 역동적으로 표현했기에 아직도 신비롭고 두렵다고 표현했다. 

◆ 문재인 변호사의 부탁은 노 대통령의 유훈 

2006년 12월 말쯤 청와대에 부부식사초청을 받은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송(국민고충처리)위원장, 대통령임기를 마치면 다시 국회의원 출마를 하려고 하는데 함께 할 거죠" 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노 대통령은 "5년 동안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동서화합을 이루려고 했다. 지역갈등을 기초로 한 왜곡된 정당구조를 개혁하고 시민들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고 한반도를 평화의 번영의 길로 이끌고자 했다. 그런데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것이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럴 때도 문 실장은 옆에서 빙긋이 웃고 있었고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었다고. 

그러다 2011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노무현 변호사와 문재인 변호사가 만들었던 법무법인 부산에서 급히 만나서고 해서 간적이 있었다. 

그때 문 변호사가 혁신과 통합 일을 도와달라고 했고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변호사가 정치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면 나 스스로도 인연의 파도를 어쩔 수 없다. 결국 문 변호사의 부탁은 노 대통령의 유훈이 아니겠는가"라고 받아들였다.

   
▲ 2014년 5월경 울산 중구에 있는 입화산을 문재인 의원과 송철호 변호사가 함께 등산하고 있다.<사진제공=송철호 변호사>

◆ 문재인 의원과 조국 교수,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 도와

세월이 흘러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문재인 의원이 "형, 무소속 시민후보 받읍시다. 어떻게든 가족을 설득해 후보로 나가면 전국 보궐선거가 12곳이 있는데 반을 울산에서 돕겠다"고 하고 함께 선거운동을 한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실제 3분의 1정도는 울산에 있었고 당시 조국 서울대 교수도 송 변호사의 생애 첫 후원회장을 맡아 돕기도 했다. 

하지만 보궐선거에 3선 시장을 중도사퇴하고 국회의원에 출마한 박맹우 의원에 맞서 무소속 야권 단일 시민후보로 나섰지만 아깝게 졌다.

선거 이후와 문 의원이 양산서 칩거하던 때 몇 차례 문 의원과 울산구치소 뒤편 모 식당에서 단둘이 소주를 한잔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게 지금생각해보면 당시 선거에서 야권단일화를 못 이룬 미안함에 대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고. 

"그 때 술을 세병정도 나눠 마셨는데 식당 주인이 약술이라고 가져왔고 몸에 좋다고 하니 남은 약술을 집으로 들고 가는 모습을 보며 정말 서민적이구나 하고 생각을 갖기도 했지요." 

2012년 KBS '창'프로그램에서 직업 종교 등을 추적해 가장 문재인 후보와 가장 가깝고 인연이 깊은 사람으로 전국 1위로 선정돼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고 했다. 
 

   
▲ 1986년 11월경 문재인 변호사와 송철호 변호사(사진 뒷쪽 오른쪽 두사람)가 함께 등산하며 기념촬영. <사진제공=송철호 변호사>

같은 해 송철호 변호사는 사람 사는 이야기 '뒤처리 분과위원장의 꿈'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갖기도 했다. 이 책은 현재 문재인 대통령도 당시 의원시절 출판기념회서 구입해 간직하고 있다. 

내년 6월 울산시장 출마여부에 대해 물었다.

"문재인 대통령 정부의 성공적 국정 수행에 보탬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출직에 나서는 것만은 피하고 싶습니다. 제 스스로와 주변이 받아온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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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2017.06.0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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