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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버그
  • 이두남
  • 승인 2017.06.1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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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두남 논설위원

[포커스데일리]오월의 바람에 떠밀려 장미화원을 찾았다.

300여종의 장미꽃이 수정체를 자극하며 환상의 성으로 안내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라 파가니니에게 바쳤다던 ‘파가니니’, 백리를 걸어와 그 발목 아픔도 잊은 채 순백의 스카프 휘날리며 피어난 ‘아이스버그’, 춤추는 듯한 ‘마돈나’,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모나코 왕비인 그레이스 켈리에게 봉헌한 ‘프린세스 모나코’가 이곳 에서 자리를 틀 줄 몰랐다.

꽃 마실 나온 행인들의 들뜬 발걸음도 꽃물이 들어 형형색색이다.

5월은 우리에게 붉은 장미의 정열을 연상케 한다. 대통령 탄핵 후 실시된 장미대선, 5.18 민주화 운동이 그러했다면 6월은 순결의 하얀 장미를 연상케 한다. 6월 항쟁, 현충일 그리고 6.25가 그러하다.

현충일이 6월6일로 지정된 것은 망종 (芒種)과 관련이 있다.

24절기 중 하나인 망종은 벼나 보리 등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파종하기 좋은 적당한 시기이며 이 시기에 전사나 사자에게 제사를 지내던 풍습이 있었다. 또한 6.25 전쟁에서 가장 많은 병사들이 희생되었기에 6월6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현충일 노래 가사에도 있듯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 충혼은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숨 쉬며 불변의 민족혼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애틋하고 아린 속내를 상쇄하려는 목마름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그들의 꽃다운 호국정신은 백 만 송이 장미로도 다하지 못하는 것일까. 

화원 한 모퉁이에서 눈이 부시도록 하얀 아이스버그처럼 뜨거운 속내를 애써 감추어 온 흔적이 백의민족을 닮아 순백의 미소를 머금고 있다.

아침햇살에 눈빛마저 고혹하여 터질듯 붉은 입술은 한 생이 가시처럼 아팠던 시절을 가리고도 남음이 있다

아이스버그, 그 단단한 베를린 장벽을 무너트린 시선이 서려있어 한민족의 무색 한복을 걸친 채 분열과 반목이 점철된 우리의 민족성에 경종을 울리려는 듯 도도히 피어나 있다.

해마다 그 절절한 한 생이 장미로 피었다 지고, 또한 철마다 잊지 않고 자기 몫을 다하며  피어 그날의 고결한 숨결들을 우리의 가슴에 각인시키고 백 만 송이 장미로도 전하지 못했던 말들은 세월의 마디로 꺾이며 피어나 이 화원을 장식하고 있다.  

장미화원을 거닐다 보면 곳곳에 발을 멈추게 한다. 활짝 웃고 있지만 헤프지 않고, 앙증맞은 몽우리는 구김살 없던 그들의 청춘과 정열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바라보는 이의 딱딱한 표정마저 활짝 펴게 하는 관능미를 과시했다.

한 때 열정의 향기를 흩뿌리며 생의 정점을 찍던 시절이 갈라진 꽃잎 사이 순연한 속살로 드러나기도 했다.

책갈피처럼 겹겹의 꽃잎은 청춘의 몸부림으로 붉었던 한 시절의 추억을 들추어내며 그날의 바람 한 점도 머뭇거리게 했다.

시작의 마디가 오직 나라를 향한 애국심 하나였다면 시들고 만 종착역은 바람처럼 허무를 삼켜야 하는 값진 인생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오랜 역사에 그들처럼 목숨을 바친 호국충정들이 없었더라면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웠을 것이다.
 
그 질곡의 서사를 담은 희고 붉은 영혼들이 장미의 열꽃으로 피어나 그칠 수 없는 아픔과 그 아픔을 어루만지는 향기로 나의 어깨를 흔들며 이 화원을 서성이게 했다.

누군가는 서글프고 누군가는 감사함이 더해지는 계절이다. 또한 그 아픈 공간과 시간을 굳이 남기는 것에 대해 고개를 가로 짓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비극의 역사는 깨끗이 허물고 그 위에 새로운 미래를 세우는 것이 보다 발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비극의 역사 없이 세워진 나라가 어디 있을까?

상처와 아픔은 언젠가는 새살이 돋아나며 그것으로 인해 더 단단해진다.

우리는 그것을 잊는 대신 오래 기억하고, 되짚어 보며 통곡과 탄식의 시간을 기억하되, 그 안에 강인한 힘과 정신을 길러야 한다.

역사와 시간을 아우르는 그들의 강인함과 용기는 우리민족의 표상이며 위대한 혼이다.

장미화원 한 모퉁이에서 순백의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스버그, 그들이 겨레의 숨결로 하얗게 피어나 이 조국을 지키고 있는 듯 했다.

한편 신임 보훈처장은 ‘따뜻한 보훈’을 표어로 내 걸었다. 현충일에 즈음하여 따뜻한 보훈이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기대된다.

*아이스버그 : 백색 장미과, 원산지 독일

이두남  webmaster@ulsanf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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